박서보는 1958년 ‘현대전’에서 현대미술협회에 의해앵포르멜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현대전’ 작품을 준비하며, 마모된 석불상의 얼굴처럼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는 구상 작업을 시도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에 점차 싫증을 느끼던 중, 우연히 물감통을 집어 던졌고, 캔버스 위에 흩뿌려진 물감을 보며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이를 작품으로 완성해, 제3회 현대전에 출품했습니다.
이 시기유럽에서는 이러한 회화 스타일을 앵포르멜이라 불렀습니다. 당시 외국 작품을 접하기 어려웠던 그는일본 잡지 등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작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불과 6개월 만에 앵포르멜 작가로 자리 잡으며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1961년, 박서보는국제조형미술협회 프랑스 국내위원회가 주최하는세계 청년 미술가전 ‘파리 초대전’에 초청받았습니다.
하지만 파리에 도착한 그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작업 공간과 재료를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쓰레기통에서 찾아 낸 용수철로 캔버스의 빈 면을 고정하고, 대바늘을 이용해 조각 천을 이어 붙이며 캔버스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버려진 러닝셔츠를 주워 틀에 끼운 뒤 당겨 고정하며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원죄”였습니다. 이후 이 작품은 파리 청년 작가 회의에 출품되어 1위를 차지했습니다.
박서보는 전쟁 경험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으며, 이 시리즈에“원형질”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는 훗날 “가난이 창조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회상하며, 그림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과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그에게 ‘원형질’이란, 프랑스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며 폐자재를 주워 작업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었습니다.